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1 카빈 (문단 편집) == 기타 == * 이 총의 개발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빗 마셜 윌리엄스는 이 총의 개발 당시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 중이었는데, 이 총의 개발로 명성을 얻고 가석방까지 되었다는 루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빗 M. 윌리엄스는 20세 때인 1921년 밀주 양조장을 급습한 보안관보를 살해하고 2급 살인죄로 30년 형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그의 가족이 살해된 경관의 미망인에게까지 감형 탄원서를 받는 등의 구명을 주지사에게 요청한 결과 1927년 한 차례의 감형을 받고 1929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나 31년에 형기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수감기간 중 데이빗 윌리엄스는 노동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권총 및 기관총 설계 특허를 몇 가지 냈었는데, 이게 와전된 것. 이후 그의 기술을 적용해서 윈체스터 사의 총기 개발자 에드 브라우닝[* '상세' 문단에도 서술했듯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이다.]이 훗날 M1 카빈의 원형이 되는 .30-06구경 M2 소총을 설계하던 중 이 총의 설계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자 윈체스터 사는 위의 데이빗 M. 윌리엄스를 채용해서 소총의 설계를 마무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탄약의 변경과 육군의 신형 카빈 채택이 이뤄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데이빗 윌리엄스가 카빈의 개발로 명성을 얻은 것은 사실이나, 그 덕분에 석방된 것은 아니다. 이런 소문이 돈 것은 데이빗 윌리엄스의 인간승리[* 아버지 제임스 클라우드 윌리엄스(James Claude Williams)는 부유한 지주였지만, 정작 데이빗은 어렸을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15세에 17세로 나이를 속여 해군에 지원했다가 거부되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다만, 17살때 군사학교에 입학했다가 총 몇자루와 막대한 양의 탄약을 훔쳐 한학기만에 퇴학당한 전적을 보면, 이때부터 범죄자로서의 싹수가 짙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보안관 살인도 정당방위 같은 것이 아니라 밀주를 제조하다 발각되어서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스토리가 1952년에 적당히 각색되어 영화화[* 당시 데이빗 윌리엄스 역을 맡은 배우는 [[미 공군]]의 전쟁영웅이자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였다.]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탓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여러 회사들이 카빈을 생산했다. GM(제너럴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Inland Division을 비롯해, 쓰레기통 깡통 만들던 Rock Ola라는 회사도 있다. 제조회사명은 가늠자 근처 상단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예비군 훈련 때 총신에 쓰여 있는 각인을 잘 보면 의외의 상표명이 가끔 보인다. 바로 [[IBM]]. 2차대전 당시에는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라는 풀네임 그대로 사무기기, 즉 [[타자기]]같은 것을 만들던 회사였고, 총기 제조와 공통점이 많은 그 생산 라인을 개조하며 총기를 공급한 것이다.[* 2차대전은 총력전이라 이런 사례가 많다. 다른 예로, 타이어로 잘 알려진 굿이어가 [[F4U|전투기]]를 만들었다.] 이런 회사들의 카빈은 대부분 소수만 생산되었고, 가장 많이 생산한 회사는 원 개발사인 [[윈체스터(총기회사)|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인랜드(Inland) 디비전이다. 인랜드의 생산량은 윈체스터보다 훨씬 많다. 그 이유는 당시 윈체스터는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M1 개런드]] 생산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972년~1974년 사이 활동했던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두 범인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3정을 탈취해 범행에 사용하였고, '''최단기간내 다량학살''' 용의자 [[우범곤]]이 탈취해 사용한 총기가 카빈이었다. 사실 범행에 사용한 모델은 M1은 아니고 M2 카빈, 물론 조정간이 존재하지 않는 모델이다. 그 이외에도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을 비롯, 군경의 카빈을 탈취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여럿 있다. *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의 주력 화기이기도 했다. [[국립민주묘지#s-2.3|국립 5.18 민주묘지]]에 세워진 시민군 조각상도 M1 카빈을 든 모습으로 조형되었다. * M1 카빈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당시 별명은 '아기 개런드'였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총이다. * 전기형 M1 카빈과 후기형 M1 카빈은 차이점이 있는데 전기형 카빈들은 총검 장착을 위한 총검돌기가 없으며, 목재 부품의 색도 진한 색이다. * 2019년 2월 Korean 서브레딧에 한국에서 수입된 M1 카빈의 스트랩에 달린 "익숙한 국방부 마크"와 한국어 문구의 뜻을 묻는 포스트가 올라온 것으로 보아, [[M1 개런드]]가 그랬듯 미국으로 소량씩 역수출되는 중인듯. 총기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jgWf9HCXUxw|Misha’s Guns에서의 M1 카빈 사용 영상이다.]] "구경 .30 칼빈 보통탄 KM1" 이라 쓰인 한국제 탄입대라고 쓰여있다.[* 대한민국은 보존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잉여탄약을 꾸준히 미국 등 해외시장에 팔아왔다. M1소총과 M1카빈소총이 엄연히 예비군용 무기로 무기고에 보관되고 있던 때에도 국산 잉여 30,06 탄, 30 카빈탄, 45구경 권총탄이 미국에서 잘 팔렸다. 미국 사람들도 매번 미제 새 탄약만 쓰기에는 비용 문제가 있으므로 싼 가격에 다량의 탄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국군 및 타국군에서 방출된 저렴한 소총탄, 권총탄들을 많이 구입했다. 우리가 무기고에서 보던 탄통 그대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글 스탬프가 찍힌 철제 탄통에 뚜껑을 열면 마분지 봉투에 포장되어 있거나 10발씩 클립에 끼워진 탄약들이 포제 탄입대(밴돌리어)와 함께 들어 있었다. 총포상, 인터넷 사이트들이나 Sportsman's Guide 같은 우편주문판매용 사냥, 낚시용품 카달로그들에 탄통 사진과 함께 한국군용 탄약으로 소개되어 루마니아, 소련 같은 동구권에서 방출된 철제 탄피 7,62×39mm 소총탄들, 심지어 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 생산된 8mm 마우저 소총탄(제3제국 독수리 마크가 찍힌 마분지 상자에 포장된 그대로) 등과 함께 판매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